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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발달사

블로클로 2020. 9. 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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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발달사

의학은 이론이 과학적이던 비과학적이던 환자가 발생하면 치료를 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고 잇고, 그 나라의 의료제도 혹은 법률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발생하는 질병의 양상과 치료 방법의 선택조차도 사회적 환경과 제도 등 의학 외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 따라서 의학을 이야기할 때는 문화,역사,제도,정책,교육, 연구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야 한다.


그러나 시대와 나라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학문이 또한 의학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의학은 인류의 건강과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의학 역시 그 대상이 사람인 이상 환자 치료에 기여하여야 하고, 또 그 효용성을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의 오랜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소중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일제 강점기 때 겪었던 역사적 단절과 해방후 근대화과정에서 겪었던 국가 정책으로부터의 소외 등의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그 정통성과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또 각국의 전통의학을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재해석 및 취사선택하는 미국의 보완대체의학과 함께 뒤섞여 바람직한 발전방안 조차 합리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기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먼저 한의학의 기원을 간단히 소개하고,다음으로는 허준이 우리나라 의학의 독창성을 천명하기위해 동의라 명명 한것에서부터 최신 한의학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잇는 내용을 소개하고,마지막에는 우리나라 한의학이 최근에 소개되고 있는 미국의 보완대체의학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할것인가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한다.


 의학은 인류의 탄생이후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아픈 부위를 만지는 단순한 행위로부터 시작하여 수술이나 약물복용등 전문적 행위로 발전하였는데, 근대에 들어서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시술할수 없는 전문영역으로 분리되어 전문병의원에서만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등 그 형태와 내용이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현재 우리나랄에는 유럽에서부터 발달하여 미국을 거쳐 도입된 서위 서양의 학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한의학이 함께 존재한다. 이처럼 이원화된 의료제도는 각 의학의 이론체계와 치료 방법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정착된 것이지만, 각 의학의 기원을 보면 환자 치료를 궁극적으로 목표로 소박하게 출발하였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초기의학이 신전에서 기도를 통하여 치료를 시도하였다거나, 동아시아권에서 무술로써 하늘의 뜻을 헤아려 질병의 원인을 찾고자 한 노력은 각 의학의 기원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나타낸다. 


동양의학의 기원과 관련하여 중국에는 동물적 본능에 기원햇다는 설, 신화적 전설에 근거했다는 설, 무의로부터 기원햇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들은 의학이 문명발전의 오랜 과정에서 상호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였다는 관점에서 보면 단편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특히 '의'자와'무'자가 항상 함께 사용되었던 문헌의 기록에 근거하여 의학이 무술로부터 발전하였다는 설이 자주 이야기 되는데, 이는 인류초기에는 질병을 대부분 초자연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그 원인을 점술 등에 의존하여 파악하고 또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치료를 시도하는 등 이성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학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단순히 의학이 무술로부터 발전하였다고 단정짓기 보다는 무술과 종교와 과학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두루 고려해 그 기원 및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이후 서양에서는 학문의 발전이 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이미 법학,시학,철학과 함께 의학이 주요한 과목의 하나로 강의되었음을 볼 때 의학은 학문발전의 초기 과정에서부터 중요한 과목으로 다루어졋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의학은 종교와 정치로부터 분리되엇고, 과학발전과 함께 의학적 관찰과 임상 경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시도되엇다. 과학의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과학은 획기적으로 발전한 반면 의학은 천문학,물리학,화학 등의 발전보다 뒤늦게 이루어졌다. 특히 현미경과 같은 도구발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생명현상 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영적인 존재를 장기의 기능과 결부시키는 비이성적 경향이 여전히 지속되엇다. 흔히 과학혁명의 획기적 예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천체인식전환의 사례를 드는것처럼 의학혁명을 설명할 때는 하비의 혈액순환에 대한 정량적인 접근을 예로 드는데, 로마시대 이후 1300년 이상이나 서양의학계를 지배했던 갈레노스의 해부학을 뛰어넘었던 하아비 역시 장기에 깃들어 잇는 영적인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본견적인 의학은 혁명은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사람이라는 존재도형이상하적 정신은 신체로부터 분리하여 신학에서 다루고, 신체는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원론을 주장한 데카르트는 사람의 신체는 기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하비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심장은 펌프와 같이, 눈은 카메라의 조리개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토대로 과학혁명의 연장선상에서 기계론적 관점에서 인체를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고배율 현미경의 발명으로 인체의 관찰범위가 조직과 세포의 미시세계로 확대되고 병원균관찰 역시 가능하게 되면서 서양의학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위 새학적인 개념이 점차 의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았고, 전쟁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의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졌고, 항생제의 발명으로 전염성 질환에 대한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지는 등의 성과를 통해 서양의하근 동양의학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한편 동양의학도 종교,정치와 연관되엇던 무속 수준의 의학이 한대를 전후하여 합리적은 의학으로 발전하면서 침구와 탕약의 사용이 본격화 되고 기초 이론 및 임상체계의 정립이 이루어졌으며, 그 성과로 [황제내경],[신농본초경].[상한잡병론] 이라는 의학서적이 출간되엇다.

송대에 들어서는 인쇄술 발달에 힘입어 의학 서적이 대량으로 보급되었고, 금원대에 이르러서는 질병인식의 견해 차이가 육기병기학파와 장부병기학파라는 구체적인 학파 성립으로 이어지며 의학 발전을 이끌었는데, 근대 서양의학이 수용된 청말 이전까지 이러한 전통은 꾸준히 계속 되었다. 즉 17세기 이후 인체를 파악하는 관점의 변화와 이에 부합하는 도구 발명을 통해 서양의학은 급변한 반면, 동양의학은 19세기에 근대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학이 도입될때까지도 고대 의학서적의 인체관과 질병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전염병에 대한 치료도 천연약재를 그대로 이용하고,인체에 대한 관찰 역시 새로운 도구 개발 대신 의사의 감각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의학 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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